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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한국의 생명을 부활시킨 전투

by ┆┝⤤✚▼ 2023. 1. 29.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낙동강까지 밀려났던 한국의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이 전투를 통해, 한국은 UN군과 함께 인천과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다.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한국 멸망 전까지 가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북한에 의해 망할 뻔하였다. 지금 한국과 북한의 군 현황과 달리, 1950년 당시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모든 군 규모에서 앞섰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전쟁 시작을 허락받은 것부터 시작하여 많은 군수 지원을 받았다.

반면, 한국은 탱크나 전투기 한 대도 없을 정도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6/25 전쟁이 발발했고, 순식간에 한국은 낙동강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다행히, 미국과 UN이 이 전쟁을 보고만 있지 않고 참전하게 되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게 됐다. 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한국과 UN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맥아더 장군의 결심

맥아더 장군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처음 남한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연합국을 한국전쟁에 참전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게 할 한 기회가 생겼다. 맥아더 장군은 많은 사람이 죽은 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 소년 병사를 만났다. 그에게 맥아더 장군은 너는 소년이고, 이 전투는 끝이 났으니 가서 쉬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맥아더 장군의 말에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제거할 수 있는 총과 탄을 주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들은 맥아더 장군은, 한 나라의 소년이 이렇게 나라를 위해 싸우는데 어떻게 참전하지 않을 수 있냐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 생각을 후회하였다. 이 소년의 말에 감동받아 결론적으로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시초 : 대북 첩보작전 (X-RAY 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확률은 5000:1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그래도 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고, 이 작전을 위해 대북 첩보작전이 개시됐다.

장학수(이정재)라는 인물이 이 임무를 담당하게 됐다.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정보를 수집하게 됐는데, 북한군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될 위기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정보를 얻어 무사히 맥아더에게 알릴 기회가 생겼고, 이를 발판으로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시행하고자 마음을 굳히게 된다.

한국을 구원하기 위한 맥아더 장군의 결정

불리한 한국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UN 군은 여러 가지 전략을 짠다.  상륙 작전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원산 / 해주 / 남포 등 확률이 높은 상륙 작전을 맥아더에게 추천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이 보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맥아더 장군은 가장 성공 확률이 낮은 인천에 상륙작전을 펼치자고 제안한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그 어느 곳보다 높은 곳이며, 갯벌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함선들이 작전을 펼치기에는 사실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은 작전 대상에서 배제되던 장소였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상륙한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상상치도 못할 말도 안 되는 작전이기 때문에, 이 작전이 오히려 한국과 UN 군에게 유리한 작전이라며 이 작전을 몰아붙인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펼친 교란작전

아무리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적더라도, 작전을 펼치겠다고 결정한 이상 성공할 확률을 높여야만 한다. 대북 첩보작전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북한이 인천 앞바다 중 어느 곳에 기뢰를 설치했는지, 주요 보급로는 어디 있는지 등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성공을 하기 위한 확률을 높이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연합군은 자신들의 무전을 도청할 북한군에게 일부로 작전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들려주는 교란 작전을 펼치자고 결정했다. 어느 날, 그리고 어느 장소에서 작전을 펼칠 것일지 등 세부사항을 무전으로 흘렸는데, 이 모든 무전은 다 허위 사실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것을 굳게 믿고 연합군이 실제로 오지 않을 장소로 많은 병력을 이동시키게 됐다.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한국군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고, 단 몇 시간 만에 인천을 수복하고 바로 서울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사전에 도청 교란 작전을 펼쳤고, 이에 북한군은 다른 곳에 연합군이 상륙할 줄 알고 인천 및 서울에 있던 병력을 다른 곳에 보내 놓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인천상륙작전은 좀 더 수월하게 성공으로 갈 수 있었다. 이 작전을 계기로 연합군은 몇 개월 만에 압록강 부근까지 점령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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