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조선 수군 덕에 멸망하지 않았다. 이 수군 활약 중 하나가 한산 대첩이었다. 원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주요 목적은 중국 진출이었다. 그러나 한산 대첩으로 인해 일본의 야망을 막는 전투가 생길 수 있었다.
명량 해전 이후 조선의 상황과 일본의 생각
영화 '한산'을 보기 이전 만약 '명량'을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명실상부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 것이다. 어찌 됐든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은 일본에게 순식간에 대부분의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멸망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졌지만, 그나마 조선에게 하나의 희망이었던 것은 이순신이 있던 조선 수군의 활약이었다. 일본 군은 당시 중국이었던 명나라로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조선 침략이 먼저였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부산, 한성(서울), 함경도, 평양도 등 조선의 북쪽까지 순식간에 점령했다. 그러나, 저 멀리 북쪽까지 침략한 일본 군인들에게 보급을 하기 위해서는 배로 갔어야 됐는데, 그 장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라도를 점령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순신(박해일)의 수군이 그 전라도 바다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일본의 보급을 차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일본은 항상 이순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전을 통해서 이겨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이순신을 번번이 일본 수군은 이기지 못했다. 이 악재를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은 와키자카(변요한)의 보유 병력을 조선으로 파견했다. 와키자카는 이순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전과는 다른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하나의 묘수는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을 유인하는 동안 비게 될 조선 수군의 군사 기지를 일본 육군이 이 타이밍에 맞게 공격하는 것이었다. 와키자카는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일본 육군의 한 다이묘와 통신을 주고받았고, 이 다이묘도 와키자카의 요구에 좋다는 의견을 보여주면서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멸망시킬 완벽한 작전을 실행하고자 한다.
이순신을 방해하는 원균과 이순신을 도와주는 항왜
이순신은 전라도 소속의 해군 장군이었다. 반면, 원균은 경상도 소속의 해군 장군이었다. 실질적으로 원균은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참으로 답 없는 장군이었다. 일본 수군에게 경상도 바다를 뺏긴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대단해서 그럴 뿐이지, 사실 군사력을 봤을 때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원균 장군이 현시대에서도 많이 비난을 받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용맹함이 없었다. 다른 조선 장수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원균 장군은 이순신의 전략이 말도 안 된다면서 비난했고, 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참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이 수군과 육군이 합동하여 전라도를 침략하고자 하는 전략을 알리고자 했던 일본의 군사가 있었다. 그는 이전의 이순신과의 해전에서 살아남은 일본 군인이었다. 포로가 된 후 조선에게 고문을 받던 이 사람은 이순신과의 만남에서 이순신이 왜 조선을 위해 싸우는지 알게 됐고, 이 이순신의 마음에 감동 입어 항왜가 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일본의 전략을 알게 되자마자 조선 군에 이 사실을 알리고자 달려가던 중, 조선 의병에게 붙잡히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처음에 의병들은 이 일본인을 죽이고자 하지만, 본인이 항왜라고 밝힌 이 사람이 중요한 정보까지 알려주자 의병들과 함께 일본과 싸우는 것을 허락했다. 이 항왜는 조선의 수많은 백성들이 '의'라는 하나의 마음가짐으로 불리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열정을 보며 또 한 번 감동을 받고, 일본 군인들과 싸우게 된다.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조선의 학익진 전략
항왜의 고발로 인해, 조선 육군은 전라도에 위치한 조선 수군 기지로 가려하는 일본 육군을 의병과 함께 싸우며 막게 됐다. 반면 바다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수군끼리의 맞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전 명량 해전에서도 조선 수군은 전략 자산으로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듯이, 이번 해전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그나마 있는 배들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육지에 있는 성이 침략하는 세력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듯, 이순신은 이러한 것을 바다에서도 구현해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전투 이전에 몇 번의 연습을 거듭 진행했고, 전투에 임하게 됐다. 일본 수군 역시 조선의 훈련을 통해 학익진 전략을 알고 있었으나, 조선의 배가 몇 척 없기 때문에 와키자카의 수군은 쉽게 이길 거라 생각하며 학익진 전략을 무시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조선의 수군이 대승을 거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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